오늘의 화두(話頭)는 '참 지식의 목적'은? 참 ''하나 - 님'.
하나 밖에 존재하지 않는 그 존재. (원래의 자연. 진리. Edea. 하나님이라 부르는 존재. etc.)을 알고 (Kinosco). 그 존재와 만나는 것.
현대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그 존재는 우리 민족사의 문화에는 수 천년 전에 존재하고 있었다.

오늘도 성서의 말씀들에 대한 참지식의 글을 끌어내어 본다!
오해는 마시라. 아직 성경이상으로 잘 짜여진 논리는 없기에...
인류의 문명 속에는 지식이 산재되어 있다. 그중에 참되며 절대적 가치를 지닌 지식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나의 존재를 더듬어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해 나를 밝혀 아는 것이다.
그런데 이 참지식은 그것을 아는 것으로 족한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의 결과가 무엇이냐에 있다.
경건 (Godliness) - 절대자에 대하여 -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 한 사실에 대한 감사로!
참지식 즉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결과 중 하나는 경건입니다. 경건이란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삶이라.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경건을 낳는다. 내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가장 위대한 사건이며 또한 유일하고 참되며 절대적인 가치를 안다는 의미다. 그러면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 것. - 고로 나도 존재한다는 사실
* 나의 삶과 하나님의 영광에 얼마나 유익한지를 아는 것이다 - 나와 하나 뿐인 '님'. 즉. 절대자와의 교통과 소통
이 귀한 지식은 자연히 우리에게 경건한 삶을 가져다준다. 또한 경건한 삶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더욱 깊고 넓게 해준다. 결과적으로 경건이 없는 곳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신앙도 없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우리의 삶을 온통 감동과 보람과 의미 있는 삶으로 완전히 새롭게 바꾸어 준다. 이것은 마치 주렁주렁 열린 과목의 열매와 같다. 경건은 바로 그 과목의 뿌리이다. 경건이 없는 곳엔 참 신앙도 참지식도 없다. 역으로 말해 경건은 신앙을, 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낳는다.
나는 지금 구속주 예수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더욱 깊은 지식이해로 나는 다만 우리가 자연의 질서대로 따라 살 때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단순하고 기초적인 하나님의 지식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먼저 우주의 창조로 자신을 나타내셨고, 이어 예수를 통해 자신을 더욱 깊게 나타내셨을 때 우리는 전자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경건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선, 지혜, 빛, 정의, 사랑, 가치, 의미, 생명, 영혼 그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은 없다.
하나님이 아니면 그 실상을 어디에서 볼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그 원인과 근원으로 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그분에게 기대하며 그분에게서 찾고 있다. 그러므로 또한 우리는 이미 받은 그것들을 감사함으로 그분께 돌려드리기를 배워야 한다. 인간은 모두 그분께 빚지고 있으며, 그분의 부성적 사랑으로 양육 받고 있다. 인간 자신이 누리는 모든 축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경건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성경은 그리스도인을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딤후 3:12)라고 칭하고 있고,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딤전 4:7)고 명하기도 했다. 여러분 모두 경건에 이르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더욱 풍성해지기를 바랍니다.
신뢰와 경외(Trust and Awe)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두 번째 결과는 신뢰이다. 신뢰란 전적으로 믿고 의지함을 뜻한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생각할 때 명심할 점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나와 관련시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와 관련시키지 않고 생각하는 하나님은 쓸데없는 공상이며, 사변적으로 말장난을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와 관계된 그분의 본성이 어떠한가, 그분의 본성과 일치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다.
나와 관련시켜 그분을 아는 지식은 자연히 내가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만들어 준다. 나와 관련된 하나님을 알 때 나는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에 전적으로 복종하게 된다. 하나님의 의지가 곧 인간 생활의 길이요 법이기에 스스로 따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자신의 삶에 풍요로움이요 행복이다. 나는 또한 모든 복의 근원이 하나님임을 알기에 환난, 고통, 궁핍 그 어느 시기에든지 즉시 나아가 보호와 도우심을 구하고 기대한다.
그분의 성품이 선이요 빛이요 정의요 사랑이기에 그것을 좋아하며 추구한다. 심판에 대한 그분의 지식을 알기에 비록 피할 길이 있다 하더라도 정의와 사랑의 길로 간다. 경건한 자에게 영생의 상급을 주시고 사악한 자에게 형벌을 주시기에 그렇지 못한 세상의 불합리를 볼 때 더욱 그분을 사랑하게 된다. 비록 지옥이 없다 할지라도 그분을 배신할 수 없으며 천국의 복락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성품을, 그분 자신을 좋아하기에 그분을 사랑한다.

여기에 참 신뢰와 참 신앙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더욱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 뜻 없이 그리고 자기 공상과 자기의 욕심과 육정에 따라 하나님을 부른다. 극소수의 사람만이 그분을 진실로 신뢰하고 경외한다.
신뢰란 전적으로 믿고 의지함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농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이것이 신앙이요, 바로 절대자에 대한 믿음의 첫걸음이다.
여러분의 하나님에 대한 밀착된 신뢰로 더욱 깊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매일 정진하시기를 축원해 드립니다!
오늘날의 '껍데기 신자'들에게 경고하노니, 참 지식을 찾으시라! 지금부터 라도...
열매 없는 목사들의 헛 외침에 빠지지 마시옵고!

그리도 찾는 하나님은 그대 안에!
아니 그대 자신이!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님'
오늘은 여기서 그만!
지행선인 소천 글 쓰다!
2023. 1. 14.

(지행선인. 소천. 권용만 교수 Ph.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