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를 찾아서!

안동권 가(安東權 家)의 뿌리를 찾아서...소생의 '씨' '안동 권씨' 이야기의 시작과 새 생명과의 만남! 소생 자신의 '씨' 와 '뿌리' 를 찾아간다!

Mind healing and joyful Life 2022. 11. 24. 08:55

안동 권가(安東 權家)의 뿌리(family root)를 찾아서...

 

 

(소생의 어머님 이신 진주 하 씨 임수 집사님 생전 모습)

 

2010. 11. 30. 에 졸()하시다.

경북 영주시 순흥면 지동리 선산에 아버님과 합장으로 모시다

향년 99세 10월... 100세 향수에 두 달이 모자라심!

'사육신 중의 한 분이신 성균관 학사  하위지 할아버님의 직계 손'

 

오늘이 2022. 11. 22.  밤 11시 10분을 벽시계의 침들이 가리키고 있다.

이 시간은 다시는 뒤로 가질 않는다!.

오늘 이 시간은 어제 이 세상을 하직(下直) 하신 분들이 하루만 더 살기를 원하여, 그렇게도 갈망하던 '내일'이다.

그러하다면 이 시간은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가요!

 

인생무근채...

세월부대인...

人生無根蔕 飄如陌上塵 分散逐風轉 此已非常身
落地爲兄弟 何必骨肉親 得歡當作樂 斗酒聚比鄰
盛年不重來 一日再難晨 及時當勉勵 歲月不待人.


인생무근체 표여맥상진 분산축풍전 차이비상신
낙지위형제 하필골육친 득환당작낙 두주취비린
성년부중래 일일재난신 급시당면려 세월부대인


인생은 밑바탕이 없는 것, 한길 위의 먼지처럼 바람에 나부끼네. 흩어져 바람 따라 뒤집히니, 이로써 이미 영원한 몸은 아닐세. 세상에 태어나 형이요 아우요 하니, 하필 혈족 사이에서만 한할 것인가. 기쁜 일 만나면 마땅히 즐길 것이니, 말술을 갖추고 이웃들을 불러 모으라. 젊은 시절은 두 번 오지 않고, 하루에 다시 또 아침 되기 어려우니, 좋은 때를 잃지 말고 마땅히 힘써야 하리니,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네.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질 않으니... 오늘날 이 소생이 있도록 이 세상에 보내주신 소생의 어머니...

진주 하 씨 가문의 여중군자(女中君子). 하 임수(河 任壽) 여사님의 생전의 모습을 오늘에 다시 뵈 오면서 옛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다.

 

여중군자 이시라! 진주 하(河)씨 가문으로 안동 권문에 18세에 혼례 하시어 슬하에 1남 4녀를 두셨다. 댁호(宅呼 : 花山宅 : 조선 문종의 국구(國舅). 왕비의 친정아버님의 벼슬을 이르는 벼슬. 화산부원군의 '화산'을 따서 : 소생의 부친의 말씀)으로 지으셨다.

 

양반가문의 출신(진주 하 씨) 답게 사육신의 한 분이신 충절의 집현전 학사! 하위지(河緯地) 학사님의 직계손의 모범을 보이셨고, 집안의 대소사에는 솔선수범(率先垂範)하시어 가문(家門)의 본을 보이셨으며, 언제나 뵈 오면 웃는 얼굴로 사람을 공대(恭待)하고 어른을 섬기시고, 83세에 작고하신 강릉 유 씨(江陵 柳氏)의 제 조모님께 어려운 살림살이 가운데서도 지극정성(至極情性)으로 공대(恭待)를 하시었으며, 항상 겸손과 인자하심을 잃지 않으시고, 매사를 처리함과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언제나 후덕함을 베푸심으로, 순흥면에서 주는 효부(孝婦) 표창을 스스로 거절하신 그야말로 '조선시대의 여인'이셨다.  어머님의 존명은 하임수. 기독교 직분은 집사님!

 

한글의 붓 필이 너무나 훌륭하시어 온 가 근동(近洞)에 혼사의 강서함(姜筮函 )과 사주단자(四柱單子)를 다 써주셨고, 봄이면 해마다 '화전가'를 지으시어 동네 사람들의 흥을 돋우시니 인근 동네의 칭송(稱頌)이 자자하였다. 그 영민(穎敏)하심이 그 시대의 '중용의 도'를 실천하셨고, 저에게는 커다란 별과도 같으신 어머님이셨다. 불민한 소생이 철이 조금 들어서 외국생활을 마치고 근 10여 년을 이 청산 땅에서 모시었으나, 참 마음의 효도를 다 하지 못함을 지금도 애통해한다. 그 며느리인 제 내자(內子. 해남 윤 씨 경순)는 어머님을 모시는 11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생과일 즙을 대접해드리고, 말벗을 해드리고, 참 다운 그리스도인의 도를 실천하였다. 어머님의 말씀마다 순종하는 마치 조선시대 여인의 모습으로 효를 행하였다.  2011. 10. 31. 에 99세 10월을 일기(一期)로  주일날 아침에 깊은 잠에 드시어 그 길로 소천하시었다. 돌아가시기 전 한 달부터 서, 당신이 마지막으로 보고 싶다고 소원하신 캐나다로 이민 간 큰 따님을 오라 하시어 큰 딸의 옆에서 일주일을 같이 하시고... 잠이 드신 채로!  그 성함대로 임수(任壽)! 자신의 명()을 하늘에 맡기고, 그 하나님을 믿음으로 100세를 두 달 남기시고 영원 복락의 세계로 돌아가시었다.

 

그 어머님이 오늘 따라서 많이 생각이 나고 뵙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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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생의 성 '씨' (family root. seed)

안동 권문의 '씨' 이야기

 

안동 권 씨(安東 權氏) 시조인 권행(權幸)은 930년(고려 태조 13년) 고창군(高昌郡. 현 경북 안동지방)에서 김선평(金宣平), 장길(張吉)과 함께 후백제군을 격파하고 고려 개국에 공을 세워 대상(大相)으로 임명되었다. '고려사'에는 흔행(昕幸)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족보에서는 본성이 신라 종성인 김()이었으나, 고려 태조 왕건은 김행의 전공을 치하하며 "정세를 밝게 판단하고 권도를 잘 취하였다(能炳幾達權)"라며 권(權)씨 성을 사성 하였다고 한다. 시조 권행의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 천등산 능골에 있다. 권행(權幸), 김선평(金宣平), 장정필(張貞弼) 세 사람은 고려 창업의 공으로 삼한 벽상 아부 공신(三韓壁上亞父功臣) 삼중대광 태사(三重大匡太師)를 제수받았으며, 983년(성종 2년)에는 이 세 분을 기리기 위해 현재의 안동시 북문동에 삼태사묘(三太師廟)가 세워졌다.

 

안동권 씨는 고려 태조 왕건 대왕이 시조이신  '행(行)'에게 안동부(安東府)를 식읍(食邑)으로 내렸기 때문에 후손들은 안동을 본관으로 하게 되었다. 안동권 씨는 크게 내세우는 두 가지 자랑이 있는데, 고려 때 권보(權溥)의 당대에 '보와 다섯 아들', 그리고 '세 사위' 등 9명이 봉군(封君)되어 '당대 구봉 군(當代九封君)'으로 이름을 떨치니 역사상 전무후무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안동권 씨에서 비롯했다는 '사시(四始)'로, '성화보(成化譜)'라는 '안동권 씨'의 족보, 나이 많은 문신이 임금과 함께 들어가는 기로소(耆老所)에 태종 때, 검 교좌 정승(檢校左政丞)을 지낸 권희(權僖)와 영의정을 지낸 권중화(權仲和) 등이 맨 처음 입소하였다는 것과  태조 때 권근(權近)이 대제학(大提學)으로 초대 문형(文衡)이 되었다는 것. 유망한 문관에게 휴가를 주어 학문에만 전념하게 하는 첫 호당(湖堂)에 권채(權採)가 뽑혔다는 것이다.

 

안동권 씨는 10세()를 전후하여 크게 15 파로 갈라지는데, 그중에서도 추밀원 부사공파(樞密院副使公派:守平)· 복야공파(僕射公派: 守洪)· 인가파(仁可派)· 좌윤공파(佐尹公派 : 至正)에서 큰 인물들이 많이 나왔다.

 

생은 15지파 중에서 '부정공파(副正公派)의 38대 손이다. 권통의(權通義)가 '파조(派祖)이시다. 조선조의 문종의 국구(國舅. 왕비의 친정아버지)인 화산부원군(花山府院君) 권전(權專)과 예조판서를 지낸  그 아들 권자신(權自愼)  조부님이 유명하시었다. 알기 쉽게 다시 말씀드리자면 영월의 청령포의 외로운 유배지에서 꽃다운 생을 마감하신 '단종대왕(端宗大王)'의 모후(母后)이신 현덕왕후(玄德王后. 문종의 왕비)께서 안동 권문. 부정공파의 윗대의 할머님이라는 말씀이지요. 구리시에 위치 한 '동구릉(東九陵 : 조선의 태조대왕을 비롯하여 아홉 위의 왕과 비의 릉)'

 

추밀공파의 고려 말·조선 초의 대학자 권근(權近)은 안동권 씨 문중 제일의 인물로 꼽힌다. 그는 많은 저서와 문집·문학작품을 남긴 경학(經學)· 문학의 소양을 겸비한 학자였다. 그의 아들 권제는 세종 때 정인지(鄭麟趾) 등과 함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지어 바친 대제학이었다. 이 밖에 명종 때 영의정을 지낸 권철(權轍)과 임진왜란의 영웅이며 도원수(都元帥)를 지낸 권율(權慄)은 부자지간이다.

 

 

(안동 권 씨 부정공파. 소생의 출생 지파.  二愚堂 종택.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49호)

부정공파인 이우다 '권 환'이 1640년. '인조 18년' 건립)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 소재

씨는 뿌리는 데로 거두리라!

권 가문의 '씨'는 대대손손 번창을 꿈꾸면서 오늘도 묵묵히 겸손히...

 

(안동 권 씨 족보. 우리나라에서 족보를 처음 만든 권 씨 문중)

 

안동권 씨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먼저 ‘사시(四始)’를 열었던 자랑스러운 가문입니다. 그것은 다른 어떤 가문(家門)에서도 일찍이 없었던 일이며, 우리 안동권 문의 명예(名譽)이자 긍지(肯志)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사시(四始)는

첫째, 왕의 자문기구로써 나이가 많고 덕이 높은 2품 이상의 원로들만 들어갈 수 있는 기로소(耆老所)에 조선시대 최초로 입소(入所)한 가문입니다.
둘째, 우리나라 최초로 대제학(大提學)에 오른 가문이기도 합니다.
셋째, 안동권 문에서 호당(湖堂. 독서당)에 최초로 들어갔습니다.
넷째, 우리나라 최초의 족보인 성화보(成化譜)를 만들었습니다. 1476년(성종 7년)에 간행된 안동권 씨(安東權氏)의 족보인 성화보(成化譜)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전해지고 있는 족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며,

우리나라 족보의 효시(曉示)는 안동권 문(權門)의 성화보(成化譜)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습니다.

(대종회장 권해옥 설)

 

(사진의 좌로부터 권오상 사무총장님. 권해옥 대종회장님.

소생 권용만 교수. 권갑현 편집위원장)

 

(대종회를 방문하여 인사를 올리다)

 

(www.andongkwon.or.kr : 안동권 씨 대종회 home page)

 

(안동 권문의 부정공파 38세 손.  용만 '容萬'의 족보이오니...)

선대의 조상님들의 위국 충정(爲國忠情)과 효행(孝行)과 학문(學文)의 도()를 다 본받지를  못하여

늘 송구(悚懼)스러운 마음을 금하질 못하니... 평생의 원()이로소이다!

오호 통제라...

 

(사람의 영혼이 가는 곳이 있다면... 내 아버님과 어머님도 저 하늘의 높은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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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친의 생전에 훈계 말씀이 바른 학자가 되어라 그리하여 이 나라에 조그마한 보탬이 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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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권문 부정공파 38세 손 '청산 거사 소천'  玄德王后 忌晨祭享 參拜 드리다!

2022' 임인년 6월 10일. 581 주기. 현릉에서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경내의 조선조 5대 왕 문종과 현덕왕후의 쌍릉)

현덕왕후는 단종의 모후이시다. 부정공파 소생의 옛 조모님

 

 

(안동 권문의 '부정공파'의 일족은 매년 동구릉에서

드려지는 '현덕왕후' 기신제에 참석하여 참배한다)

 

 

(문종대왕. 현덕왕후의 사당으로. 제관이 정렬하여 숙연한 걸음을...)

 

(부정공파 종친회 고문이신 권 영도 어른. 종가 어른. 맨 우측이 필자 소천 권 교수)

 

(향배 후 부정공파 족친들과 함께...)

 

 

(문종 대왕릉과 현덕왕후 쌍릉. 初獻禮 禮畢  忌晨祭享. 2022. 6. 10.)

 

(권 영도 고문님 가족과 함께)

 

(유건. 도포. 붉은 紅紳. 보선. 행전. 油鞋의 의관정제 후 제관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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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섬김()의 道里!

 

세상의 천지만물에는 모두 다 그 근원이 있고, 동물에도 종족을 보존하는 '생명의 씨앗'인 '종자'가 있고,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사람에는 그 선친(先親)으로부터 내려받아서 또한  나의 아래의 후대(後代)로 이어지는 '생명의 씨'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성씨(姓氏)가 무슨 성()이라고 한다. 

성씨의 '성' 자()는 '어머니. 여자가 낳은' 뜻으로서 '여자 여'자() + 날 생자(字)로 합성된다.

 

부생아신 모국오신

모국오신

복이회아

유이포아

이의온아

이식포아

은고여천

후덕사지

위인자자

갈불위효

심보성은

호천망극이라!

 

이 칼럼은 계속하여 쓰입니다.

 

2022. 11. 24. 오전 9시경...

청산 산방에서

청산 거사 소천이 글을 쓰다!

 

(울돌목에서. 명량해전의 구국충정을.. 이 충무공을 기리며...)

 

(이 나라의 예를 가르치고 실천하게 한 교육의 산실인 향교. 권교수 논어와 중용을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