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老子)는 누구이고 도덕경은 어떤 책인가 하는 명제로 이 글을 시작한다. 긴 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기독교. 불교. 그 다음으로 설(說)하고자 하는 것이 이 '도덕'에 관한 思想이다. 이 나라의 道德은 땅에 떨어져서 다시 일으켜 세우자고 하는 이가 하나도 없으니 이 무슨 망발(妄發)인가?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나라가 이 모양이 된 것인가? 예도 없고 의도 하나 보이지를 아니하니 앞르로 후세에게 무엇을 남겨두랴! 오호 통제라! 뭐라고 바른 말을 하면 왜? 과거로 회귀하려는가고 질타를 한다. '온고이지신'이라고 배웠으니... 소생은 당연지사로! 이제부터라도 생각이 있고 귀가 있는 자가 있으시면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이 노자의 도덕경을 한 번 공부하시어 보자구오!
5,000자의 글 속에 담겨진 그의 사상과 우리들에게 주시는 교훈의 세계를 심도있게 들여다 본다. 사실 동양에서 철학이라는 학문이 언제부터인가 하는 것은 중국의 아편전쟁 이후에 받아드린 것이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중국이 아편전쟁(阿片戰爭)에서 대패한 이후 그들이 사고한 결과로 이 전쟁의 패인(敗因)을 분석한 결과는 이들에게 과학과 철학이 없었다는 사실임을...이 시대에 약삭빠른 일본이 동양에서는 제일 먼저 서양의 문물들을 수용하기 시작한다. 신조어가 된 이 '동양철학'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가? 동양철학(Oriental Philosophy)는 철학적인 방법으로 동양의 사상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해석이 되지요. 철학의 개념정리는 스스로 내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자신의 인생철학?은 자신만이 알고 그렇게 고집으로 살다가 죽으니...서양의 철학의 시조는 '탈레스(Thales)'이라고 한다. '물이 만물의 근원이다'. 철학은 원래 신(神)이라는 존재로부터 탈피하자는 의견의 집합이다. 그 이전의 관습적인 신관(神觀)으로부터 인간성의 독립을 의미한다. 그 이전에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의 근원은 모조리 다 신의 작품이라고...
다시말씀드리면, 인간이 '맹목적인 믿음에서 새롭게 두뇌를 사용하는 생각'이 출발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이 원칙은 같다. 그저 맹목적으로 종교에 매달리어 허무맹랑한 소리에도 그것이 신이 주는 계시인냥 절하고 두손 비비고 돈 바치고 전도한다고 자하철에서 시끄럽게 소란 떨고, 성지순례라는 장사까지도 서슴치 않는 시대이다. 왜? 좀더 철학적인 생각으로 접근하지를 아니하는지? 조용히 묵상하면 그 길! 즉, 모든 삶의 모든 도가 보이는 것을... 서양에서는 '탈레스'를 철학의 시조라고 한다면, 그러면 동양에서는 누가? 그 시조일까나? 물론 여기에는 노자와 공자를 말한다.
공자는 세상이 너무나 잘 아는 분이라서... 짧은 일화를 소개하면,
사실 공자가 배움을 청하려 노자를 방문하였을 때에, 이르시기를 "“군자는 때를 만나면 나아가서 벼슬을 하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뒤로 물러나 숨어야 하는 것이오. 내 일찍이 듣기를 ‘훌륭한 장사꾼은 귀중품을 감춰놓은 채 아무것도 없는 듯이 행동하고, 완전한 덕성을 갖춘 사람은 겉으로는 다만 평범한 사람으로 보인다.’라고 했소. 그러니 그대는 몸에 지니고 있는 그 교만과 욕심과 위선 따위를 다 버리시오.”
이러했던 노자의 출생과 그 이후의 말씀의 교훈은?
기원전 604년 9월 14일, 중국 초나라 고현의 여향 곡인리에 한 여인이 자두나무(李樹)에 기댄 채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이 아이의 어머니는 떨어지는 별을 찬양하면서 62년 동안 임신해 있던 상태였고, 그때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말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전설에 다르면, 그 아이는 주위의 자두나무를 가리키며 “나는 이 나무를 따서 성(姓)을 짓겠다.”라고 말했다.
그 후 그는 자두나무(李)에다 자신의 큰 귀(耳)를 상징하는 이름을 붙여 스스로 이름을 이이(李耳)라 했다. 그러나 그의 머리칼은 벌써 하얀 눈처럼 희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두고 '노자(老子)라 불렀다. 노(老)는 늙었다는 뜻이고, 자(子)는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존칭어다.

(노자의 고향이라고 알려진 여향 곡인리의 모습이다. 허난성(河南省) 녹읍 태청궁에 소재해 있다.)
노자는 유가에서 내세운 명분주의와 인위적인 조작에 반대하고 무위자연(無爲自然)에 처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유가의 인위적인 도덕이 끼치는 폐단과 인간의 위선을 고발함으로써 좀더 근원적인 진리로 나아가고자 했다.
노자는 주나라에서 왕실의 장서고를 기록하는 수장실사(守藏室史)로서, 사십여 년간 있었다고 한다. 이 무렵 공자의 방문을 받았는데, 공자는 노자에게 예(禮)에 대해 물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자가 볼 때, 공자는 아직도 혈기가 왕성한 청년에 지나지 않았다.
“군자는 때를 만나면 나아가서 벼슬을 하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뒤로 물러나 숨어야 하는 것이오. 내 일찍이 듣기를 ‘훌륭한 장사꾼은 귀중품을 감춰놓은 채 아무것도 없는 듯이 행동하고, 완전한 덕성을 갖춘 사람은 겉으로는 다만 평범한 사람으로 보인다.’라고 했소. 그러니 그대는 몸에 지니고 있는 그 교만과 욕심과 위선 따위를 다 버리시오.”

(노자를 맞는 윤희가 노자를 맞는 그림이라 알려진 작품이다. 후베이성 무한 장춘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처럼 공자에게 따끔한 충고를 가한 노자는 스스로 재능을 숨겨 이름이 드러나지 않도록 애썼다. 그러나 주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고 그곳을 떠나기 위해 함곡관에 이르렀을 때, 국경을 수비하던 관리 윤희(尹喜)라는 사람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가 권하는 대로, 상하 양편의 오천 자로 된 '도덕경(道德經)'을 완성하게 됐는데, 이렇게 본다면 윤희라는 사람이야말로 거의 노자와 맞먹을 정도로 큰 공헌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만약 그가 노자에게 글을 쓰도록 종용하지 않았다면, 오늘 우리는 가장 값진 한 권의 책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 독일의 사상가 슈테릭히는 “세계에 단 세 권의 책만 남기고 모두 불태워버려야 한다면, 《도덕경》이 그 세 권 가운데 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백육십 살 또는 이백 살을 살았다고도 전해지는데, 그 최후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그의 가장 중요한 교훈 다섯가지를 알아본다!
위선과 가식을 버리라
뤄양(洛陽)을 떠날 무렵, 공자가 다시 노자를 찾아 작별 인사를 드리자 그는 공자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고 한다.
“부자는 재물을 가지고 사람을 배웅하고, 선비는 말로써 사람을 배웅한다고 하오. 그런데 나는 돈이 없으므로 선비의 흉내를 내어 말로써 선물을 대신할까 하오. 총명한 사람이 자칫 죽을 고비에 이르게 되는 것은 남의 행동을 잘 비평하기 때문이오. 또 학식이 많은 사람이 자주 위험한 고비에 부딪치는 것은 남의 허물을 잘 지적하기 때문이오. 그러므로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자기의 주장을 함부로 내세워서는 안 되오!”
이 말을 듣고 돌아간 공자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새는 공중을 날아다니고 물고기는 헤엄을 치며 짐승은 달린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는 활을 쏘아야 잡을 수가 있고, 물속을 헤엄치는 고기는 그물을 쳐야 잡을 수가 있고, 달리는 짐승은 덫을 놓아야 잡을 수가 있다. 하지만 용에 대해서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용은 바람과 구름을 타고 구만 리 하늘로 오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만나본 노자는 바로 용이었다.”
과연 큰 도(大道)란 무엇일까? 노자에 의하면, 그것은 무위자연의 도다. 위대한 도가 무너졌기 때문에 인의가 생겨났고, 지혜가 나오고 나서 큰 거짓이 생겨났고, 집안이 불화하기 때문에 효와 자애가 강조되었으며, 나라가 혼란할 때 충신이 필요했다. 이처럼 유가에서 강조하는 덕들은 이미 그것들이 사라지고 없음을 반증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애초부터 큰 도리를 굳게 잡아 나갔더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을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일을 꾸미려 하니 일이 꼬였던 것이고, 다시 그것을 억지로 고치려 하니 일이 더 얽히고 설키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런 배경에서 노자는 유가에서 말하는 성스러움과 지혜와 인의를 오히려 끊어버릴 것을 요구한다.

노자에 대해서는 공자보다 조금 앞선 시대의 노담(老聃)이라는 설명도 있고, 공자와 동시대의 노래자(老萊子)라는 설명도 있으며, 전국 시대의 태사 벼슬을 지냈다는 노담(老憺)이라는 설명도 있다. 일반적으로 공자보다 앞선 노담을 노자로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릇의 빈 곳이 쓰임받는다
유가에서 말하는 도(道)란 인간의 윤리에 국한된 것이다. 하지만 노자가 말하고자 하는 도는 천지 만물, 모든 자연의 이법(理法)으로서 우주의 근본 원천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도란 우리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궁극적 원인으로서, 모든 법칙 중의 법칙이자 모든 척도 중의 척도다.
이에 대해 노자는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 도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개념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도 없다. 그것은 우리가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으며,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다. 왜냐하면 도에는 어떠한 빛깔도, 어떠한 소리도, 어떠한 형체도 없기 때문이다.
'노자수경도(老子授經圖)'이 그림은 노자가 소나무 아래에 있는 평상에서 경(經)을 강의하는 모습이다. 노자는 후대 도교 신도들에게 신격화되어 교주로 받들어졌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어떤 모양을 갖는 존재는 모두 도에서 생겨난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 도는 어떠한 시간적 · 공간적 한계도 갖지 않기 때문에 무극(無極)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무가 단순히 텅 비어 있는 공무(空無)인 것은 아니고, 도리어 모든 존재를 생겨나게 하는 무(無)라고 해야 할 것이다.
노자는 무의 효용성을 다음과 같이 비유한다.
“수레바퀴에는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한 바퀴의 통에 모여 있긴 하지만 그 가운데가 비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수레를 사용할 수 있으며, 또 찰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들 때 그 빈 곳이 있기 때문에 그릇을 쓸 수 있으며, 문과 창문을 뚫고 방을 만들되 그 가운데가 비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방을 쓸 수 있다. 그러므로 유(有)가 이용되는 까닭은 무(無)가 작용하기 때문인 것이다.”
굽은 나무가 제 수명을 누린다
공자는 “우리가 선에 대해서는 선으로 대하되, 악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정의로써 응징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에 반해 노자는 선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악에 대해서까지 포용하기를 가르친다. “적에게도 덕을 베풀라. 오직 다투지 않은 그것으로 인해 천하가 그와 더불어 다툴 수 없다.”라고 말한 것이다.
여기에서 노자의 윤리가 갖는 특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첫째, 소박함이다. 그는 인간의 재치와 이기심 등 작위성을 멀리하고 무욕에 처하도록 가르치며, 또한 물질적 재화에 대해서도 귀하게 여기지 않도록 당부한다. 덕을 두터이 지니고 있는 사람은 갓난아기와 같아서 독 있는 벌레도 물지 않고, 사나운 짐승도 덤벼들지 않으며, 사나운 새도 채가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억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재앙에 맞닥뜨리게 마련이며, 마음이 기운을 부려 뭔가를 이뤄보려고 하는 사람은 억지스런 삶을 꾸려가기 십상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왕성하게 번창하다 보면 곧 늙어 시들어버리기 마련인데, 이는 천하 만물의 도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둘째, 노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유연성이다. 마치 부드러운 물이 견고한 바위를 뚫는 것처럼, 부드러움은 딱딱함을 이길 수 있다. 이처럼 도란 어떤 의미에서 물과 같다. 물은 모든 사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먼저 가려고 다투지 않으며,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물려 한다. 물과 같이, 모름지기 현자는 이웃에게 선을 베풀며 유익을 안겨주면서도 다른 사람 앞에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며 항상 겸손한 자세로 살아간다.
셋째, 무위(無爲)의 실천이다. 여기에서 무위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억지를 피하고 자연스럽게 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억지로 꾸며서 하는 행위는 오래가지 못하고 곧 그치게 마련이다. “자기의 키를 커 보이게 하기 위해 발끝으로 꼿꼿이 선 사람은 오래 서 있지 못하고, 마음이 급하여 두 다리를 크게 벌려 걷는 사람은 멀리 가지 못하며, 스스로 나타내려는 사람은 도리어 드러나지 못한다.”라고 한다. 환경이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 욕심대로 정권을 잡아보려 하거나 욕심껏 돈을 벌어보려 하는 사람은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다. 이 간단한 이치를 모르고 욕망대로 행하다가 망한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렇다면, 이러한 무위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노자는 먼저 우리가 분별지(分別知)를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흔히 사람들은 부귀영화를 좋은 것이라 여기고, 빈천굴욕을 나쁜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이것들은 본래 하나다. 동전의 양면과 마찬가지로, 복과 화는 우리가 늘 안고 가야 하는 두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재앙은 복이 의지하는 바요, 복은 재앙이 깃드는 곳이다. 올바른 것이 다시 기이한 것이 되고, 길(吉)한 것이 다시 흉(凶)한 것으로 된다. 이처럼 화복은 본디 둘이 아니고 하나인데도, 사람들은 상대적인 관념에 사로잡혀 재앙을 멀리하려 하고 복을 구하려 한다. 바로 여기로부터 모든 환란이 생겨난다.

굽은 나무가 제 수명을 누리고, 자벌레는 몸을 굽혔다가 펴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물은 파인 곳에 고이며, 옷은 닳아져야 새것을 입고, 욕심이 적어야 만족을 얻으며, 아는 것이 많으면 도리어 미혹에 빠진다.
가끔 우리가 보듯이, 크게 이룬 것(大成)은 모자란 것 같으나 그 쓰임새에 그침이 없고, 크게 찬 것은 빈 것 같으나 그 쓰임에 다함이 없다. 크게 곧은 것은 굽은 것 같고, 크게 교묘함은 서툰 것 같고, 크게 말을 잘함은 말더듬이 같다. 이와 같이, 노자의 윤리는 무위자연에서 소박하고 유연하게 살아갈 것을 우리에게 권한다.
백성의 눈높이에 맞추라
현자에게 요구되는 무위자연의 도는 정치가나 통치자에게도 요구되게 마련이다. 특히 정치는 백성과 천하 만물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므로, 무위의 도덕정치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노자에 의하면, 정치가는 다변(多辯)을 일삼아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말을 많이 하다 보면 말에 실수가 있게 마련이고, 국민들이 식상해하고 피곤해한다. 또한 통치자는 많은 법률을 만들 필요 없이 담담하게 스스로 덕을 펴나가기만 하면 된다.
정치가가 위선을 부리거나 힘으로 다스리려고 하면, 백성들이 그를 불신하고 경멸한다. 스스로 마음을 비우고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국정을 이끌어간다면 모두의 환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천하에 금기조항이 많을수록 백성은 더욱 가난해지고, 백성들에게 편리한 기구가 많을수록 나라는 더욱 어지러워지며, 사람들의 재주가 많을수록 기이한 물건이 많이 나오고, 법령이 밝아질수록 도적도 많아진다. 이 모든 것이 억지로 백성을 다스리려 하는 데서 오는 폐단이 아닐까?
현자를 특별히 대접하지 않아야만 백성들이 서로 다투지 않게 되고, 얻기 힘든 재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아야만 백성들이 도적질할 마음을 먹지 않게 되며, 욕심낼 만한 것을 드러내 보이지 않아야만 백성들의 마음이 어지럽지 않게 된다.(不尙賢 使民不爭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不見可欲 使民心不亂) 지식 있고 지혜로운 자라고 해서 특별대우를 하면 모두 학벌만 갖추려 할 것이고, 돈이 있건 없건 모든 국민이 법 앞에서 평등해야만 악착스럽게 돈을 벌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고, 또한 사람의 탐심을 자극하지 않아야만 국민이 순박해진다.
어진 임금이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고집을 피우지 않고 백성들 편에 서서 그들의 눈높이와 마음에 맞도록 스스로 맞춰나가면 된다. 설령 백성들이 귀로 듣기 좋은 것, 눈으로 보기 좋은 것에 대해서만 욕심을 낸다 할지라도, 천진난만한 갓난아이를 대하는 것처럼 다스려나가야 한다.
성인은 물 흘러가듯이 자연스럽게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데, 가령 백성들이 죽음을 중하게 여기고, 먹는 음식을 맛있게 여기며, 입는 의복을 아름답게 여기고, 사는 거처를 평안하게 여기며, 행하는 풍습을 사랑하도록 하면 된다. 기괴하고 특별한 것에 마음을 두기보다 가장 평범하고 상식적인 삶을 살도록 해주면 그만이다. 그러면 백성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다른 나라를 부러워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작은 나라와 적은 백성을 꿈꾸다
유가는 춘추전국 시대의 혼란한 사회 속에서 인위적인 도덕에 의해 질서를 회복하려 했다. 그러나 노자는 이러한 방법에 반대하고, 무위자연을 주장했다.
보통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행동하기 마련이어서, 가령 재앙을 멀리하고 복을 구하려고 한다. 본디 하나인 이것들을 구분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삶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통스런 현실을 벗어나는 길은 본래부터 타고난 자연으로 돌아가 작위 없이 사는 것뿐이다. 유가에서는 인의니 예악이니 하여 어떤 규범과 덕목을 내세우지만, 노자는 모든 억지스러움을 버리고 차라리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친다.
또한 노자는 정치론에서 유가의 대통일 국가라는 이상에 맞서며, ‘작은 나라와 적은 백성’(小國寡民)이라는 이상사회를 제시했다. 인위적인 도덕과 잡다한 지식에서 벗어나 소박하게 생활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며, 위정자는 백성들의 이러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 무위의 정치를 시행해야 한다고 보았다.

무위와 무욕의 이상사회, ‘소국과민’ 노자(老子) 80장에 나오는 말이다. 그는 “다시 옛날로 돌아가 풍속을 즐겁게 여기게 해야 한다.”라고 했다. 도연명의 '도화원'에 나오는 ‘무릉도원’을 이상국가로 보았다.
그러나 대개 큰 사상가들이 뛰어난 제자들을 많이 배출하는 데 반해, 불행하게도 노자에게는 그 깊고 오묘한 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킬 만한 제자들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학설은 후대의 사상가들에 의해 왜곡되고 변질되면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더구나 이것이 무술이나 마법, 연금술이나 불로장수법과 같은 미신과 뒤섞여버린 탓에 노자 자신의 순수한 이론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말았다. 현대사회에선 노자의 도가사상을 일러 하나의 무위자연쯤으로 치부해버린다. 참 애석한 일이다.
이 글은 게속해서 써지오니...
2023. 8. 27. 일요일에...
청산산방에서. 지행선인 소천. 권용만 교수 글 쓰다.

(늙어서 태어난 아이, 그래서 老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