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 원칙 내지는 규범.
예의. 예절에 대하여 좀 논하여 본다.
아니. 좀 알아보는 것이 아닌 소생의 유튜브의 Cotents. Core. Key Point로 삼아서 후학들을 만나려 한다.
참으로 중요한 말과 글인데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선뜻 그 진지하고 숭고함을 말하지 않으시니, 불가불 청산 산골 선비가 입을 연다.
도덕성이 높은 사람은 대개 예의범절이 바르고, 또 바른 예의범절 교육을 통해 도덕성 자체를 높일 수 있는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무슨 일에서나 속과 겉, 안과 밖, 본과 말이 언제나 일치하고 일관된 것은 아니듯이, 도덕성과 예의범절이 부합해 있는 것만은 아니다. 다시 말해 예의범절이 반듯하다 하여 그 행위에 반드시 도덕성이 깃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예의범절은 풍속성이 강하기 때문에, 같은 수준의 도덕성도 시대와 지역 또는 족속에 따라 전혀 다른 표현 방식, 곧 판이한 예의범절을 가질 수가 있다. 예를 들어, 공경의 마음을 표시해야 할 국면에서 도덕성은 '진실한 공경의 마음'에 있는 것이며, 머리를 숙여 인사하느냐, 무릎을 꿇고 인사하느냐, 악수를 하느냐, 단지 목례만을 하느냐는 예의범절에 속한다. 무릎을 꿇고 인사하는 자가 목례하는 자보다 반드시 도덕성이 뛰어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니까 남이 나와 다른 예의범절을 가지고 있다 하여, 그것만을 보고서 나보다 도덕성이 높다 혹은 낮다고 평가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가 삿대질로 상대가 잘못했다고 한다. 그래서야 되겠는가? 서로가 겸손히 행하는 사회는 언제인가? 초등학교에서 말하는 어린이들 입을 한 번 보시라! 옛날에는 어른이 아이를 가르쳤는데, 요즘은 아이들의 말을 어린이 보다 별로 잘 나지 못한 어른들이 그 아이들 말을 배운다. '헐' 이게 뭡니까? 이게 말이요 말똥이요, 뭐요?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은 잠시 뒤로 미루고...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아야 하는 단어. 선생님! 이를 무슨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말에도 '씨'가 있어서 '말씨'라 한다. 도덕과 인의예지는 모두 '말과 행동'에서 나온다. 그것을 보고 '예'가 있다 없다고 말한다. 오늘도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이 참으로 바르게 하셨다고 생각하시는지? 말은 생각에서 나오는 것을 하셨는지?
자. 작금의 우리의 사회를 자세히 바라보자.
석학 김동길 교수님은 늘 하시는 말씀, "이게 뭡니까?"
이래도 됩니까? 그 옛날 우리의 정신문화를 유도해서 사회의 기본 질서를 이루어 나가던 도덕과 예의 규범은 거의 무너지고 삼강오륜을 물어 보았더니, 다 모른다.
여기서 잠깐 우리가 늘 알고서. 그리고 행하는 '철학(Philosophy)'에 대한 간단한 언급을 해 본다.
우리들은 너무 쉽게도 철학을 매일하고 있다. 그런데도 '철학'이 무엇인가고 물어오시는 사람이 많이도 있다. 소생의 답은 '지금 말하고 듣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 모든 것'이라고 답한다.
'철학'은 무엇을 하는 학문인가? '철학함'이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 철학의 정체는 무엇이며, 철학한다는 게 도대체 무엇엔가에라도 쓸모가 있는가? '철학'에 접하는 많은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보통 사람이나 '철학자'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이나 자주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한다. 이는 '철학'에 '학'(學) 자가 붙은 것을 보면 무슨 '학문'은 '학문'인 모양인데, 그 말이 지시해 주는 바가 쉽게 파악되지 않음이 그 첫째 이유일 것이다. '학', 다시 말해 '학문'을 무엇인가에 관한 '체계적 이론' 내지는 어떤 '이론적 체계'라고 한다면, 대체 '철학'이란 어떤, 무엇에 관한 이론 체계인가?
물리학은 사물의 물질적 원리에 관한 이론 체계요, 심리학은 사람의 마음의 원리에 관한 체계적 이론이요, 법학은 법에 관한, 생물학은 생물에 관한 학이며, 정치학이라는 것도 정치에 관한 어떤 종류의 이론 체계거니 하는 짐작이라도 간다. 그런데, '철'(哲)에 관한 학이라는 것도 있는가,
아니면 '철'하는 활동도 학문 활동이란 말인가?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의아심을 가지면서도 명칭만 가지고 철학에 대한 어떤 감(感)을 잡을 수가 없어, '철학'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벌어진 일들의 현장, 즉 '철학사'(哲學史)를 들춰보며 '철학'의 정체를 파악해 보려 한다. 그러나 '철학사' 책을 넘겨 가면서 이른바 '철학자'들 스스로 자기가 하고 있는 일, 즉 철학을 규정한 것을 살펴보면, 그 다양함이 자못 철학자 수만큼이나 됨을 발견하게 된다.
대체 이런 사정은 무엇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사람마다의 '철(Philosophy)'과 '학(Learing)'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론이라 함은 무언가 무거워야하고 어려워야 하고 듣기도 난해한 그런 것들이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다 무지의 소치이다.
학문이란 학문(學文)과 학문(學問 )이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의 학문(學聞)이다.
진정한 학문. 배움. 앎. 지식. 철학 등등은,
들음에서 배우고 그것을 다시 물어서 '글'로써 표현 보전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일컬어서 하는 말!
아! 그럼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도덕과 '철학'이 무슨 관계인가?
생각하는 철학이 없으면, 사람의 모든 언어와 행동이 기초부터 잘 못되어 간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생각 없는 말과 행동은 사람의 기본은 아니다'. 그래서 철학을 하라는 말씀이다.
자. 이제 결론을 한 번 보시자구요!
나는 참 도덕적인 인간인가?
나는 참 선한 것을 위한 삶을 살았는가?
'그러하오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그대는 철학을 통한 도덕을 알고 계신지라!
그 도덕을 잘 지켜나가 주시기를..
결코 진리의 배반자로 남지 말으시기를..
오늘은 이만. 여기서.
청산산방. 靑山山房 에서.
智行鮮人. 글 쓰다.
(지행선인. 소천 권용만 교수. P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