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話頭는 '자연 앞의 인간은 무엇인가요?'이다. 올 들어 6호 태풍인 태풍 '카눈'이 대한민국으로 다가오는 날! 뉴스에서 10일 오전에 이 태풍이 남해안에 上陸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올 들어 6호 颱風인 '카눈'은 우리나라 중심부를 貫通하여 북한으로 북상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 태풍은 江原圈域과 南部地方을 中心으로 많은 비와 강한 바람을 同伴하고 전국적으로 影響을 미칠 것으로 豫想된다고 한다. 참으로 걱정이 크다. 농민들의 피. 땀 어린 농사가 비와 바람의 피해를 입지를 말아야 하는데... 지난번 集中豪雨로 滿身瘡이 되어버린 마을과 農耕作地가 아직 復舊도 못하였는데...
(태풍의 눈)
이 天災로 인한 天災地變은 왜? 이 땅의 모든 것을 만든 創造者요 絶對者로 불리는 신(神. god. God)은 왜? 沈默만 하고 아무런 손을 쓰시지 않는지가 참 궁금하지 않은가? 홍해의 열림처럼 그 위대한 역사는 한 번으로 끝인가 보다. 홍수가 나서 토사가 밀려와서 아무런 준비가 없던 잠자던 사람을 덮어버려 그 귀한 생명을 잃어도 누구 하나 이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친 신(God. god) : 두 신의 격이 다르기에 대문자 G와 소문자 g를 쓴다)도 없었고 석가세존(인간의 108 번뇌를 들어서 해결하시는 분)도 없었고 그 위대한 마호메트도 하늘에 올라간 이후로는 감감무소식... 그런데도 죽을만하면 살려달라고 기도하고 매달리니... 이것이 아니러니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것은 소생의 생각이니 시비나 태클은 걸지 마시기를... 생명은 오고 가는 바를 알지 못하니, 언제 그 마지막 순간을 당할지는 아무도 모르지를 않는가? 단지 생명이 이 땅에 존재하는 날까지 사람은 "덕을 세우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 나 홀로 외롭지 않고 반드시 나와 동행하는 식구. 친지. 친구. 그리고 이웃이 있으리라" 이는 공자님의 훈도의 말씀이다.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이라...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사람들은 저마다의 종교(宗敎)를 가지고 거기에 자신의 신념(信念)과 신심(信心)을 걸고 착하고 덕성스럽게 살려고 애를 애(toil and moil)를 쓴다. 돈으로, 기도로, 봉사로, 전도로... 그렇게 해야 무엇을 한 것 같으고, 또 그래야만 믿는 신으로부터 무엇을 받을 수 있는 것 같으니... 그러나 그것은 모두 다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라! 그래도 저래도 아무 소득이 없는 것이다. 뭐 살아 있는 존재라야 무엇을 하고 말고 할 수 있지? 다 죽어서, 그것도 수 천 년 전에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을 가지고... 죽은 자가 무엇을 하리오? 적어도 살아 있는 자는 거짓말이라도 할 수 있지 아니한가? 그러고 보면 참으로 허무하기 이를 데가 없다. 불교의 명승(名僧)인 원효대사는 그것을 잘 간파(看破) 한 것이다. 해골 속의 물을 마시고 그것을 안 연후에... 지난번 글에서 '무자진경'을 다루었다. 진정으로 도(道)가 무엇이고 '길'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자가 참 복을 누리는 것이다. 그것은 권력으로도, 돈으로도, 힘으로도 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고요한 마음의 평정심에서 우러나온다.
길을 알고 그 길로 가는 사람과 길이 어딘지 모르면서 가는 자의 종말은 판연히 다르다. 한 사람은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천국을 볼 것이요, 다른 한 사람은 전혀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 판단의 몫은 그대 자신의 몫이니... 종교에 의지하든지, 아니면 제 자신의 주먹에 의지하든지, 문제는 진정성이 있는가 아닌가 이다. 아무리 거룩한 모습으로 성전에 가고, 법당에 들지라도 내 마음 안의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으면 그저 헌금하고 그 마당만 밟고 돌아설 뿐이니라... 108번을 절 한다고 길이 열린다면 매일 108번이 아니라 1008번 절하고 온 인생의 기간 동안 절만 하다가 끝이 나도 좋으련만... 그 시간 108배가 끝나고 산문을 내려오는 순간 그 기도는 사라져 버리니... 교회 안에서 열변을 토하는 목사의 설교애 아멘과 할렐루야를 수 백번 해도 교회 계단을 내려오는 순간 머리는 백지가 되니... 그것을 어찌 진정성을 담아 실천에 옮길 수가 있을까? 이 진정성은 마음의 끝이 없는 훈련이다. 인간은 누구나 단기 기억에 약하다. 그러나 지나간 날에 경험한 장기 기억은 언제나 명료하게 떠오른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젊은 날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이다. 마음은 이팔청춘인데 몸은 후패하여 죽음의 날로 맹 돌진을 하니... 무엇을 보고 바라며, 어디에 자기 진정을 다하여 생명이라도 버릴 것인가?
당신의 마음은 진정 무엇을 바라고 종교인의 생활을 하시는가?
종교인 - 신앙인 - 성도 - 구원을 얻은자 - 직분자. 장로. 법사. - 인도자. 행불자 - 설교. 설법자 -?
독자제현은 어디쯤이신가요?
어디나 상관이 없을 것이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진정을 다하여 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는 그 어렵고 험한 길을 가소 계신지? 아니면 그저 인생의 좋은 액세서리 하나를 가슴에 달고 계신지?
어찌하든지 이제는 인간은 자연 앞에 솔직한 자세로 귀의(歸依)해야 할 시기이다. 그대들의 종교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의 우위는 없는 것이요, 순수한 진리 만이 그 자연이 답을 줄 수 있으니... 오로지 그것을 구하고 찾을 때라는 말씀입니다.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도 못할 것이며, 불교에만 극락이 있다고도 못할지니, 누가 그곳을 보고 온 자가 없기에 그것을 증명하지 못하니 증명이 되지 못하면 곧 진리가 아니라는 말씀이외다.
그러나 자연은 우리들에게 천국이니. 극락이니, 지옥이니. 연옥이니 하는 것을 말하지 아니합니다. 그저 자연은 자신이 있는 그대로 춘하추동의 변화만을 우리에게 제시할 뿐! 그러나 그 막강하고 위대한 힘은 세상에 당할 자가 없으니... 이것이 곧 진리요 길이 생명이라는 말씀! 그래서 사시사철의 자연이 우리들에게 보여 주는 현상(허상이 아닌 실상)에서 진리를 깨달은 자가 진정성이 있는 종교인이요 신앙인이 될 것이다. "무자진경"!
태풍이 오면 그 태풍을 피하는 법을 알아야지, 그 태풍에 맞설 수가 없듯이... 진리가 우리 앞에 오면 그것에 순종하는 길이 생명의 길임을 명심해야 할 일...
결론으로 '자연 앞의 인간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인간의 입과 행위에서 타인들의 것을 보고 깨달아 배우려는 어리석음을 이 시간부터 버리시라 권면하나이다. 너나 나나 다 갑남을녀요 필부필부라. 그저 도토리 키재기일 뿐! 설교단상 위에 선 목사가 성스럽고 능력이 나오는 것처럼 보입니까? 명승대찰에서 붉은 가사와 장삼을 걸치고 반 말로 "그렇지? 아닌가" 하면서 위세를 부리는 고승이 위엄이 있는가? 그도 저도 다 보통의 사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 그저 다만 그 방법을 좀 터득하고 연구하고 답습하여서 그럭저럭 잘 포장하는 기술일 뿐...
그대들 자신이 스스로 자연(自然)앞으로 돌아가고 그 안으로 들어가서 그 진리를 만나시라고 다시금 권면합니다요!
태풍과 쓰나미가 우리의 삶을 엄습하여도 굳게 서시는 여러분이 되오소서... 아멘. 나무 관세음보살. 인솰라!
우리 모두는 다 제 갈길이 있으니, 그 길을 바로 찾으시기를...
2023. 8. 9. 수. 청산산방에서
지행선사(知行先士) 소천 권용만 교수 이 글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