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스로 깨어나면! 頑固(완고)한 지금의 自我가 무너지고 새로운 自我가 들어 나는 법! 이는 자신이 '無知의 知'를 알고 世上事에 대하여 또 다른 眼目을 가지고 對하는 法이다. 法은 곧 물이 흐르는 원리와도 같다. 물의 흐름과 停止함의 原理를 體得하면...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방송과 Mass Media, 그중에서도 You-tube라는 Media를 통해서 참(眞)과 거짓(似)이 뒤엉킨 情報(Infromation)의 혼탁(Confused)과 혼돈(Chaos)의 소용돌이(Swiring)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무런 걸음(Filtration)이 없는 수많은 진실과 거짓의 세상을 바라보면서 소생은 이 多樣함 속에서 참된 나를 찾아서 참된 자아(Ego)를 찾아가는 길은 어쩌면 불가능(Impossible)할지도 모른다. 이 민족이 양극화된 정신과 천지의 원리를 분간(分揀)치 못하고, 오직 자신이 보고 듣은 바만 주장하는 세대에 이른 것은 아닐지...
이런 시대적인 흐름 속에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하려고 함은 혹자(或者)에게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발상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와 학문은 언제나 그 본류를 잃지 않는 법이고, 사람의 기본 성품 또한 변함이 없다는 점을 간과(看過)해서는 안 될 일이다. 침 스승이 없고, 도한 사람의 도리를 아는 참으로 근본이 사라지고 있으니... 오호 통제라!
조문득도(朝聞得道) 면 석사가이(夕死可而)라 하였으니, 참 진리를 알고서 죽으면 그 아니 가상(嘉尙) 한 일이 아닐지요!
자신을 참으로 아는 법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사료(思料)가 됩니다. 이는 천만인의 생김새가 다 다르고, 그 타고난 성격(Personaliy), 성질(Temper), 성품(Character))이 다 다르기에... 그러하기에 우리 모두는 다른 이의 말과 사상과 이론을 잘 들어야 한다. 조문득도(朝聞得道) 란 '아침에 잘 듣고서 그 도(道 : 참다운 길과 방도)를 깨달으면, 석사가이(夕死可而 저녁에 죽어도 참 가상한 일이다'는 의미이지요!
여기에서 도(道)라는 의미는 유교적인 '도덕(道德)적인 도'와 불교의 '자비(慈悲)의 도'와 예수님의 '사랑(愛) 실천의 도'를 모두 다 포함한 참된 진리의 길을 의미하지요. 그러나 노자(老子)의 도(道)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 즉 '세상의 모든 것의 있어짐과 운행의 길"을 이르고 있지요. 우리가 그 어느 방법을 선택하든지 그 그것은 각 개인의 성향에 따를 것인데, 그중 가장 중요한 점은 그 길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는 자기 자신이기에... 자신을 버린 의타의 방법은 무의미한 것이라... 이 세상의 모든 존재와 현상을 나 자신이 주인이다는 이기심이 없는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물의 흐름과도 같은 '참'을 찾는 것이 곧 '깨달음'이라고... 이 깨달음은 반드시 자신이 '깨어져야 도달'하는 경지임을 마음에 새기면서....
모든 학문과 종교의 근원과 마침은 진리를 알고 나서, 자신이 먼저 그 길로 가야한다는 대명제(大命題)를 염두에 새겨야 함을...
다음 장(章)에서 뵈옵지요!
청산산방 권 선비가...